본문 바로가기

하루, 잡감

무기력하고 건조함. 메마른 영적인 상태에서도...

반응형

 

부활을 맞이하였다. 

사순 시기를 돌아보면 ... 내 삶에 비춰 참된 회개와 보속을 하기 위한 시간으로 채워내었다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많은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주간을 너무도 메마르고 건조한 가운데 보냈으며 아울러 밀려오는 무력감에 영상으로 참례하는 성삼일 전례 마저도 제대로 참여하질 못하였다.

 

 

부활대축일을 맞이하던 밤의 영적인 상태는 분명 무기력함. 건조함. 메마름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영적인 상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겨우 겨우 힘을 내어 묵주를 쥐고 5단의 고비를 넘어가는 것이 전부이고,  영상으로 매일미사를 참례하나 신령성체를 하는 순간에조차 건조함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영적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시간 중 일부를 기도에, 미사에 참례하며 봉헌한다.

 

'2천년 전 살다가 죽었던 예수란 인물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삶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메마름과 건조함이 지금의 내 상태와 같지 않을까? 아예 하느님을 몰랐던 이들 혹은 억지로 하느님을 밀어내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영적인 상태가 어쩌면 이토록 메마른 것은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지금 건조하고 메마른 상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에 축복을 주시라 청하며 이 시간을 봉헌하며 지내고 있다. 

 

물론, 단순히 이것만으로 족하진 않다 싶어 ... 나의 일상 또한 성찰하며 돌아보고 있다.

나는 과연 오늘 하루, 나의 지향을 온전히 하느님께로 두었던가?

그러기 위해 영적 독서와 기도 시간을 확보하였는가?

그리고 살아낸 하루동안 내가 지향했던 바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의 명예를 위한 것인가?

 

나의 지향과 실천이, 이기적 욕구와 복락만을 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메마름과 무기력함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면 '이 상황을 허락하시는 데에도 하느님의 뜻이 있을 터' ...

 

하느님 앞에 내어놓기에 부끄럽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다시금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함은 당연하고,

그런 노력과 함께 이 메마름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저 흔들림 없이 하루를 잘 봉헌하며 살아낼 수 있도록...

버텨낼 수 있는 힘을 주시라 청할 따름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