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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아 사무엘아_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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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아 사무엘아_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11)

기도로 마음을 다 잡고 맞이하는 새벽.

 

오늘밤만도 벌써 세 번이나 잠을 못 이루고 깨 버렸다.

통증이 심하여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니 일상에서 느끼는 육체적 피로도 가중되는 듯도 하다. 그러니 더 간절하게 숙면을 원하고는 있지만 그러려면 수면제에 의존해야 하는데, "아서라, 관두자" 싶다.

 

잠이 들었다가도 통증을 느껴 깨고, 다시 묵주를 쥐고 다시 잠을 청하며 기도하다 깨기를 여러 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쉬이 잠이 들수도 없고, 그렇다고 처방해준 분량 이상으로 양약을 먹을 수도 없으니, 이왕지사 잠에서 깨었으니, 숙면을 취한 셈 치고, 성경 통독을 이어가고, 성무일도를 바친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방법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고 한다. 그 말은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부르시는 방법 또한 그만큼 다양하다는 의미일 터. 언제 어느 때건 우리를 부르실 수 있는 하느님이시기에, 수없이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일상에서,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리는 것.

어쩌면 거기에서 다시 하느님과의 친교는 시작되는게 아닐까 싶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오랫동안 품어왔으나,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차마 청하지 못하는, 그래서 미처 말이 되지 못한 깊은 곳의 갈망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이 시간을 내가 어찌 살아내는지도 보고 계실 것이기에 지금 느끼는 모든 것을 당신께 올려드린다. 

 

하느님이시면서도 인간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셨는 분이셨으나 우리 모두의 죄를 짊어지고 온갖 수모와 고통을 참아 견디며 갈바리아를 오르셨다. 지금 내가 느끼는 육체적 고통과 불편함의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으나 분명 나의 탓에서 기인한 것일 터이니, 언감생심 나의 '고통'을 어찌 골고타를 오르시는 예수님의 그것에 비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의 죄까지도 짊어지고 오늘도 제대 위 골고타를 오르시는 예수님께, 내 머리카락 한 올 만큼의 무게만이라도 가볍게 해 드리고픈 마음에, 당신의 수난 고통을 생각하며 '순간'을 봉헌한다. 

 

나에게 일어나게 하신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이 시기가 지난 후에 오늘의 기억들이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삶에 소중한 기도였기를 소망하면서.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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