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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잡감

기도를 하는 동안에는 적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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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한다고 해도 죄를 안 짓는것은 아니다.

그럼에도...적어도 기도하는 시간만큼은 죄를 덜 짓는 것은 분명하다.

 

기도에는 염경기도도 있고, 묵상도 있고 또 관상도 있다.

염경기도를 하는 순간에도, 묵상하는 순간에도, 관상기도에 들어가려 노력하는 중에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분심꺼리에 마음을 뺏기는 때도 없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기도한다고 앉아있는 순간에도

생각으로, 마음으로 죄를 범하기도 한다.

 

 

기도하는 때에도 죄를 짓는 경우는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겠지만,

가장 흔한 것은 기도하는 순간에 나를 분심케 하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버리면서

생기는게 아닐까 싶다. 

이 분심이란 녀석은 오랜 시간을 기도생활을 해온 수도자, 성직자들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니 날라리 신자인 나야 뭐 ...ㅎㅎ

 

어느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기도하는 순간에 떠오르는 분심은 자연스러운 것.

 

우리의 일상이 세상과 사람들과의 분주한 관계 속에 놓여있고,

우리의 의식 또한 항상 그러한 관계들 안에 놓여있는 순간 순간을 살고 있기에,

분주하게 지내다가 기도하려고 탁 앉았다고 해서 단번에 

그러한 관계와 일들에서 자유로워지는게 아니기에 분심은 자연스레 일어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하느님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려고 침묵 속으로 들어가려 할때...

그 고요함이 오히려 나의 '생각'을 더욱 더 잘 정리할 수 있게 해주는 환경이 되기에,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께 마음을 모아 대화하려던 기도의 순간이

오히려 하느님의 뜻, 하느님은 뒤로 밀어내고,

'나의 생각만 정리하게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기도한다고 앉아있지만, 고요한 분위기가 오히려

나를 억울하고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만든 사람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게도 하고,

내가 했던 어떠한 선택들,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인하여 

처해있는 지금의 처지만 한탄하는 시간으로 빠져들게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나를 분심케 하는 것들을 따라가지 않는 것

 

기도 중의 분심이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기도로 봉헌하는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하느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을 흩어버리는 그것들을 따라가지 않고,

흘려버리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씀하셨다.

 

나도 모르게 생각의 늪에 빠져버렸을 때나 그러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처음 기도하려고 앉았을때, 어떠한 마음으로 앉았던가를, 

오늘은 어떠한 마음을 주님께 봉헌하러 하였던가를 떠올리고

(천천히 호흡을 고른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나 중심의 고민거리들을 천천히 흘려보내다 보면,

기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그분 말씀의 요지다.

 

사실...뭐...나도 잘 안되긴 하지만, 

한시간 동안 기도하려고 앉아있을 때, 

적어도 분심거리를 따라가지 않고 흘려버리고자

호흡을 고르는 일을 수차례 하다보면,

어느새 기도시간이 다 끝나가는 경우도 적지않더라.

 

그럼에도...분심거리를 따라가지 않고자 노력하며,

오로지 주님과 성모님을,

또 어떤 때는 나의 주보성인을 떠올리며 집중하다보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 같더라. 

 

그리고 ... 또 어떤 때에는...

주님과 대화할 준비가 되기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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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만약 기도할때마다 똑같은 분심거리, 똑같은 생각 또는 장면에

계속 사로잡히게 되거나 떠오른다면, 그것이 어쩌면 기도의 주제가

될 수 있다고도 하시니 그걸 잘 분별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지속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그 장면 혹은 생각이

바로 기도 안에서 답을 얻어야할 것이기도 하니까...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굳이 기도하고 성찰하는데 도움을 얻고자

신부님을 대면하여 만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가톨릭 관련 사이트 같은 상담 게시판에 글을 올려서 묵상과 성찰거리에 대한

도움을 얻는 것도 한 방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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