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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일 독서기도] ..성 막시무스 주교의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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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일 독서기도

성 막시무스 주교의 강론 중에서...

 

어제 독서기도를 하면서 내내 마음에 남았던 구절이 있어 써본다.

지난 주일에 읽었던 글귀인데, 하루가 지나도 잊히질 않더라. 

 

교회에서는 아무리 죄가 많은이라 할지라도 진심으로 통회하고, 다시 주님께로 다가와 용서를 청하는 이를,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다짐하는 죄인을 하느님께서는 내치지 않으신다고 가르친다. 사실 이러한 가르침은, 성경에서 용서받은 죄인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면,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부활 이후의 복음과 독서기도 등을 볼때에도, 대부분의 내용은 죄에 물든 과거를 벗고, 새롭게 시작하기를 초대하는 내용이며, 그 근거는 '모든 죽음',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기인하고 있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또 받아들여진다해도 하나의 문제가 남는다. 과연 내가 정말 용서받을 수 있는가. 내 양심에도 걸리는 그 잘못들을 정말 주님께서는 용서해주시고, 죄 투성이의 나를 과연 안아주실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죄를 용서하시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바로 주님, 당신께서 행하시는 것임을 머리로는 안다고 할지라도, 그 말씀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안기가 쉽지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나의 주관적 경험에 비춰볼 때, 이는 회개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하느님께서 나를 용서하신다 한들, 나 자신 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든 죄악에 찌든 나의 과거, 그리고 스스로도 용서하기 힘든 나의 죄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순간...스스로에게 마치 숙제를 주듯이 '보속거리'를 찾고, 하느님의 자비하신 사랑을 차단해버리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내가 지은 죄로 인하여 상처받은 주님의 마음을 기워갚기 위해 보속할 거리를 찾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나쁠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권장할 사항이라고 우리 교회에서는 가르친다. 다만, 스스로가 '이만큼은 해야만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며 스스로 단죄하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자신을 내맡기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영화 미션 중에서...

하나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영화 미션에서의 멘도사 수사('로버트 드 니로' 분)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죄인줄도 모르고 죄를 짓고 살던 스페인 노예무역상이자 형을 죽인 살인자(결투를 통한 살인은 살인으로 인정되지 않던 시대)인 그는 가브리엘 신부를 따라 과라니족을 찾아가는 여정 내내 무거운 칼과 무구를 짊어지고 그 힘든 길을 간다. 버리지 못한 과거의 기준과 집착을 짊어지고, 또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을 짊어지고 그 힘든 길을 오르며 마치 '이렇게라도 해야만 용서받을 수 있다'는 듯이...그런 모습을 함께 길을 가는 영적지도자(가브리엘 신부)와 동반자(수사)는 말없이 지켜보며, 멘도사 수사 스스로 아집과 집착 나아가 교만의 알을 깨고 나오기를 기다려준다. 

 

 

죄의식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양심이 맑고, 영혼이 순수한 사람일수록 이런 류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고 어느 원로신부님께 들었던 기억이 있다. 세상에서 용서받기 힘든 죄를 지었다한들, 우리의 죄를 뚫고 들어와 영혼을 치유해주시려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거부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지은 죄에 갇혀 스스로의 영혼을 가둬두어서는 안된다.

 

세상에서 지탄받는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사회법적인 테두리에서의 죄는 법적으로 처벌을 받게 마련이고, 이미 그것은 지나간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죄를 두번 다시 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하느님의 법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극악무도한 죄인이었다 할지라도,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죄악에 갇혀 질식하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다시 생기를 얻고 숨을 쉴 수 있도록 일어서고,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아닐까. 

 

지난 주일 독서기도의 성 막시무스 주교의 강론의 일부를 옮겨본다. 

 

"누구도 자신이 짊어질 죄의 짐 때문에 하느님 백성의 예배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됩니다...강도가 천국을 얻었다면, 그리스도인이 어찌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겠습니까?"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할 죄의 무게가 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안고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허나... 그렇다한들 나 스스로가 주님의 자비로움과 사랑을 거부할 필요도, 그래서도 안된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은 바로 '나와 같은 죄인'들을 위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그분의 은총을 갚아 나가고자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극악무도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부어주시는  사랑과 자비하심에 나를 내어맡기고, 과거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자 노력하면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청은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 42)라는 우도의 기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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